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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6] [명사와 함께하는 아트투어 4탄] 나는 사진이다. 김홍희선생님과 함께하는 북인도 탐방및 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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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차 (ORCHHA)
오차는 괄리오르에서 잔시를 지나 카주라호가는 길로 18km들어간 지점에 있다. 비르 싱 데오가 자신에게 수여된 지역들을 관장하는 중 심지로 삼았던 곳이다. 아름다운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지만, 지금은 찾는 사람이 적은 한적한 시골에 불과한 오차는 여행자를 묘한 감상에 젖게 만드는 곳으로 놓치기에는 아까운 곳이다.

카주라호 (KHAJURAHO)
카주라호는 아그라처럼 인도를 대표하는 유적지가 되어 있는 곳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카주라호는 그 위치상 아주 외진 곳에 있다. 카주라호에 이 소문난 사원들을 조성해 놓은 찬델라 왕조는 라지푸트의 계통으로, 이처럼 외진 곳에 턱없이 많은 수의 사원들을 조성해놓은 것을 해명이라도 하려는 듯한 신화를 지니고 있다. 카주라호의 사원들은 인도의 주요 볼거리라 할만하다. 옛날 대 찬델라국의 수도였던 이곳은 이제 조그만 마을이 되었다. 일부 릭샤꾼과 장사치들은 정말 끈질기게 달라붙는다. 한가로운 오차에서 온 여행자라면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그들의 치근덕거림을 보상하기라도 하려는 듯 조각상들은 뛰어난다. 카주라호의 사원들은 그들 찬델라 왕조가 주로 섬겼던 시바와 비슈누신을 모신 것들인데, 이 사원들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다름아닌 사원의 신전들을 둘러싸고 빽빽하게 새겨져 있는 조각들이다. 신전의 벽에다 온갖 신과 여신을 비롯하여 요정이나 신화상의 동물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묘사했을 뿐 아니라 병사와 연주인 그리고 당대 사람들의 일상 순간들처럼 실재하는 것들도 묘사하여 조각해놓아, 사원을 장식한 조각들은 뜯어볼수록 생생한 감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곳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남년 교합상인 미투나상들이다. 세계적으로 이보다 더 뛰어난 사원 예술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사원군
카쥬라호의 중심부위 바로 곁에 자리잡고 있는 이 사원군은 담장으로 둘러쳐지고 사원들 간의 공간은 정원으로 가꾸어져, 널찍하고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다. 입구를 들어서면 왼편으로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은 락시미와 바라하 사원으로 900년경에 건축된 것이다. 작은 규모의 신전인데 비슈누신의 3번째인 화신인 멧돼지를 모신 곳이다. 락시마나 사원은 930~950년경에 건축된 규모가 만만치 않은 것으로, 요정들의 조각들과 함께 사원을 받친 기단 주위에 새겨진 작은 쿠기의 성적인 조각들로도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곳이다. 메탕게스바라 사원은 현재도 많은 사람들에 의해 예배된다. 예술적으로나 건축미로나 가장 뛰어나다고 인정되는 칸다리야 마하데브 사원으로 1025~1050년에 건축된 사원이다. 이 사원의 벽을 장식하고 있는 900개가 넘는 조각들은 사람들의 온갖 군간을 묘사하고 있다. 태양신인 수르야를 모셨던 사원인데 신전 안에서는 7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를 모는 신상과 함께 11개 화신의 얼굴을 지닌 비슈누 상을 볼 수 있고, 신전의 외벽에선 사냥하는 모습과 춤추는 요정상 등을 볼 수 있다.

바라나시 (VARANASI)
신성한 강과 강둑 위, 시와 SHIVA의 도시 바라나시는 인도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 중 하나다. 힌두교 순례자들은 이곳에 와서 강가 강물에 목욕하는데, 이는 모든 죄를 씻어내는 종교 의식이다. 이 도시에서 사망하면 목셔(탄생과 죽음의순화에서 해방)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이곳은 생을 마감하기에 상서로운 곳이다. 너무도 개인적인 삶과 죽음의 의식이 바라나시의 유명한 가트에서 공개적으로 이루어진다. 과거에 이 도시는 까시 및 버라너스라고 불렸다. 현재의 도시명은 두 강 ‘워루나(Varuna)와 아씨 (Assi) 사이에 있는 도시’라는 뜻의 옛 이름을 되찾은 것이다.

갠지스강 (가트)
혼잡한 바라나시의 시가지에서 발생하는 온갖 오물이 흘러가는 곳이 갠지스 강이고, 동물과 어린아이 그리고 수행자(원하는 경우)들의 시체들과 같이 힌두 계율상 화장될 수 없는 시체들이 수없이 버려지는 곳이 갠지스 강이고, 차츰 공업화되어 가는 인도의 추세에 따라 더욱더 심각하게 오염되어 가는 곳이 갠지스 강이다. 그러나 힌두교인들에게 이곳의 강물은 변함없이 성스러운 것이어서 마시고 목욕하고 그리고 수영을 즐기는 데도 물로 인한 질병을 앓게 되는 것 같지는 않다.

사르나트
석가모니 부처는 보드가야에서 깨달음을 얻은 후, 열반에 이르는 중도의 법을 설법하기 위해 바라나시에서 북동쪽으로 10km 떨어진 이 작은 마을에 왔다. 이후, 위대한 불교 황제 아쇼카는 이곳에 장대한 스투파와 사원을 세웠다. 사르나트는 지칠 줄 모르는 중국인 순례자 법현 스님이 5세기에 이 유적지를 찾았을 때 최고의 융성기를 맞고 있었다. 현장 법사가 640년에 왔을 때는 사르나트에는 1500명의 승려, 100m 가까이 되는 높이의 불탑, 거대한 아쇼카 석주 및 기타 경이로운 유적들이 많이 있었다. 석가모니 부처의 유명한 첫 번째 설법인 ‘녹야원에서의 설법’을 따라, 이 도시는 사슴공원이라 불렸다. 이 후 불교는 곧 쇠퇴기에 들어섰으며 이슬람교 침략자들이 도시 건물을 파괴하고 더럽히자, 사르나트는 껍데기만 남게 되었다. 1835년이 되어 영국 고고학자들이 발굴 작업을 시작하고 나서야 사르나트는 옛 영광의 일부를 되찾았다. 현재는 주요 불교 중심지이다.

녹야원
사르나트 성지라고도 한다. 녹야원•선인론처•선인주처•선인녹원•선인원•선원•녹원•녹림 등 여러 가지로 불린다. 석가가 35세에 성도한 후 최초로 설법을 개시한 곳이며, 이때 아야다교진여 등 5명의 비구를 제도하였다고 한다. 탄생(룸비니) •성도(부다가야) •입멸(쿠시나가라)의 땅과 더불어 불교 4대 성지의 하나로 일컬어지며, 다메크탑을 비롯한 많은 불교 유적과 사원 •박물관 등이 여러 곳에 남아 있다. 박물관에는 아쇼카와 석주두를 비롯하여 많은 유품들이 소장되어 있는데, 특히 네 마리의 사자상으로 된 주두는 인도미술 최고의 걸작으로 마우리아기에 속하는 가장 오래 된 유물이다.

아그라(AGRA)
바라나시와 함께 인도를 방문하는 거의 모든 여행자들이 방문하는 도시 아그라는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타즈마할’이 있는 곳이다. 무굴 제국의 수도이기도 했던 아그라는 타즈마할 이외에도 아그라성이나 시칸드라 등 큰 규모의 유적지들이 많이 있는 곳이다. 수도로서 화려한 역사를 지닌 아그라는 역사의 냉정한 시계바늘 앞에서 그날의 영광을 알리기라도 하듯 '천국의 무덤' 타지마할 만을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뉴델리에서 남쪽으로 204km밖에 떨어지지 않아서 하루 일정으로 방문하기도 좋은 도시이다.

타즈마할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타지마할은 궁전이 아닌 무굴 제국의 5대 황제 샤자한의 부인인 뭄 타지마할의 무덤이다. 샤자한이 17년의 결혼기간 동안 14명의 아이를 낳고. 15번째 아이를 낳으려다 1629년에 세상을 떠난 부인 뭄타즈 마할을 추모하여 만든 모덤이다. 1631년에 짓기 시작하여 22년만인 1653년에야 완공되 이 건물의 정면 마당에는 수로르 둔 전형적인 무굴 양식의 정원을 두고, 좌우로는 회교사원과 회당을 둔 구조로 도어 있다. 타즈마할의 뒤편으로는 야무나 강이 흐르고 있는데, 높은 축대로 쌓여진 야무나 강 쪽의 뒷면을 제외한 타즈마할의 삼면은 모두 높은 담이 둘러져 있다. 이 사랑을 위한 불멸의 금자탑은 이란의 쉬라즈 출신인 우스타드 이샤에 의해 설계된 것인데, 그의 설계대로 만들기 위한 장인들은 터키, 이탈리아, 프랑스 등지에서 차출된 장인들을 포함하여 2만여 명에 이르렀고 22년간 공사 끝에 1653년 완공했다고 한다. 건축을 위한 자재로는 운반을 위해 1,000여마리의 코끼리가 동원되어야 했던 라자스탄의 마크라나에서 채취된 대리석을 비롯하여 건물 안의 세세한 장식을 위하여 러시아와 중국 둥지에서 수입해야 했던 엄청난 규모의 준비과정과 장인들을 동원하여 만든 타즈마할의 건축비는 당신 돈으로 500만 루피여다고 한다. 타즈마할을 이루고 있는 대리석은 햇빛의 각도에 따라 다른 색감을 보여 아침과 한낮 그리고 석양 무렵의 느낌이 다르고, 달빛에 따라 다른 색감을 보여 아침과 한낮 그리고 석양 무렵의 느낌이 다르고, 달빛에 따라서도 느낌이 다르다. 타지마할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약간의 몸수색이 필요한데, 성냥이나 라이터, 음식물들, 날카로운 모든 것들은 반입이 금지된다.


아그라 성
야무나 강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아그라 포트는 철옹성으로 만들기 위해 높이가 50m에 이르는 성벽은 '머리카락 한 올도 낄 수 없도록' 쌓아졌다. 성안의 여러 건축물 중 볼만한 것들로 힌두와 중앙 아시아의 건축 양식이 혼합된 양식을 보이는 흥미로운 건물인 제항기르 궁전과 모티 마스지드 그리고 두개의 접견실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제일 관심을 갖고 찾는 곳은 8각형의 탑과 같은 형식의 구조물인 무삼만 버즈이다. 사만 버즈 혹은 자스민 타워라고도 불리는 이 무삼만 버즈와 얽힌 샤 자한의 사연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자이푸르 (JAIPUR)
구시가지를 채우고 있는 분홍색 건물들로 해서 핑크씨티 (PINK CITY) 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는 자이푸르는 주의 수도이다. 강력했던 무굴 황제 아크바르와의 혼인을 통한 특별관계를 맺음으로 해서 그에 따른 혜택과 평화를 즐겼던 암베르 성 주재 라지푸트 출신인 자이 싱 2세가 무굴 제국이 무너져가던 무렵인 1727년 말, 본거지를 이곳으로 옮기며 성을 쌓음으로써 시작된 곳이다. 성은 힌두 특유의 건축 양식인 실파 샤스트라에 입각하여 벵갈 출신의 젊은 건축가와 자이 싱의 합작으로 설계되었는데, 7개의 문을 지닌 성 안은 직사각형 모양의 7개의 큰 구역들로 구분되도록 배치되어 있고, 성 중앙에 자리잡은 궁전은 널찍한 두 공간으로 감싸이도록 되어있다.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어 아늑한 느낌과 함께 좋은 경관을 갖고 있는 자이푸르 성 안 건물들의 벽이 온통 분홍색으로 칠해지게 된 것은, 1876년 웨일즈 왕자 (후의 에드워드 7세) 가 이곳을 방문하였던 것이 그 계기이다. 당시의 마하라자가 웨일즈의 방문을 기념하여 라지푸트들에 의하여 전통적으로 환영한다는 뜻으로 사용되던 분홍색을 온 시가지에 칠해버린 것으로 지금은 PINK CITY로서의 성가를 지키기 위한 당국의 강제적 규정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암베르 성
자이푸르 북쪽 11Km떨어진 곳에 웅장한 외양을 보여주는 곳이 바로 암베르 성이다. 우리나라에도 많이 소개된 코끼리 택시(4명을 채워야 출발한다)를 타고 흔들흔들 성으로 들어가며, 원숭이들도 많아 관광객과 뒤범벅이 되어 있다. 16세기에 축성된 이곳은 당시 소왕국의 수도였다. 자이푸르 시내에서도 30분이면 도착하며, 산 능선을 따라 축조된 성벽 조차도 당시 라자스탄의 주도인 자이푸르의 위용을 실감할 수 있다.

하와마할 (바람궁전)
1799년 건축된 하와마할은 자이푸르의 주요 명물 중 하나다. 중심가를 내려다보는 이 5층짜리 건물은 정교한 벌집 모양의 분홍색 사암 창문 등 라즈뿟 족의 놀라운 에술적 수완을 보여준다. 원래 왕실 여인들이 도시의 생활과 행렬 등을 지켜볼 수 있게 할 목적으로 만들었으며, 지금도 작고 깨진 겉창으로 사람 구경하기 좋다. 꼭대기에서 보는 경치도 훌륭하다. 이 궁전은 마하라자 써워이 쁘러땁 씽이 만들었으며, 씨티팰리스 구역의 일부이다. 하와마할 입구는 뒤쪽에 있다. 하와마할을 마주보고 섰을 떄 왼쪽에 있는 교차로로 다시 가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다가 다시 오른쪽에서 첫번째 골목의 아치길을 통화하면 된다.

씨티팰리스
구시가지 중심에 있는 씨티팰리스는 안뜰, 정원, 건물로 구성된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다. 바깥쪽 벽은 제 씽이 세웠지만, 추가된 다른 벽들은 훨씬 최근의 것으로, 일부는 20세기 초반에 지어졌다. 현재 궁전은 라자스탄과 무글 건축의 혼합이다. 씨티 팰리스 궁전 부지에 닿기 전에 무바럭 머헐(환영의 궁전)을 볼 수 있다. 19세기 후반, 마하라자 써워이 마도 씽 2세가 이곳을 찾는 고관들을 접대하기 위해 지었다. 지금은 왕실 의복과 꺼시미르의 파시미나 등 훌륭한 숄 컬렉션을 보유한 마하라자 써워이 만씽 2세 박물관의 일부다. 마하라니스 팰리스(왕비의 거처)는 현재 무시무시한 무기 컬렉션을 전시하고 있고, 디와네암(공식 접견실)에는 복잡한 장식에 페르시아어 및 썬스크릿 필사본을 보유한 미술관이 있다.

잔타르만타르
씨티팰리스 입구 옆에는 잔타르 만타르가 있다. 1728년 제씽이 짓기 시작한 천문대이다. 제씽의 천문학에 대한 열정은 전사로서의 활약보다 더 두드러진다. 이 천문대를 건축하기 전, 그는 학자들을 해외로 내보내 외국의 천문대를 연구하도록 했다. 자이푸르에 있는 천문대가 그가 지은 5개 천문대 중 가장 크고 보존이 잘 되었는데, 1901년 복원했다. 다른 네 개의 천문대는 델리, 바라나시, 우자인에 있고, 다섯번째 무트라의 천문대는 파괴되어 없어졌다. 언뜻 보기에 잔타르 만타르는 그저 거대한 조각들을 모아 놓은 곳처럼 보이지만, 사실 각 건축물은 일(월)식 계산 등과 같은 특별한 용도가 있다. 가장 인상적인 기기는 해시계로, 27m 높이의 바늘이 있으며, 바늘이 드리우는 그림자는 1시간당 최대 4m를 움직인다.

델리(DELHI)
인도의 수도로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답게 대통령 궁을 비롯한 각종 관공서와 사무실, 공연장 등이 집중되어 있는 델리는 크게 올드 델리와 뉴 델리로 나뉘어 진다. 올드 델리는 13세기에서 18세기까지 무굴 제국의 중심지로서 좁은 골목길과 들러선 시장에서 이슬람 문화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반면에 뉴 델리는 1911년 인도를 통치하던 영국이 수도를 캘커타에서 이곳 델리로 옮겨와 개발한 지역으로 현대식 건물과 넓고 곧게 뻗은 길들로 연결되어 있어 인도의 다른 도시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델리는 인도로 들어가기 위한 주요관문중의 하나이며 특별히 북인도로 올라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치게 되는 관문으로서 여행 중에 한번은 머물게 되는 도시이다.

라즈가트(간디묘)
비폭력 평화운동을 이끌며 인도의 독립운동을 이끈 마하트마 간디가 화장된 곳이다. 푸른 잔디밭이 펼쳐진 가운데 검은 대리석으로 된 제단이 놓여있고 제단의 정면에는 간디가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오! 신이여!"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 제단에 오를 때에는 신발을 벗어야 한다. 라즈가트의 도로 맞은편의 간디 기념 박물관에는 간디에 관한 각종 자료 및 유품, 사진, 도서 등이 전시되어 있어 아울러 가볼 만하다.

인도문
코넛플레이스에서 동남쪽으로 2.5km지점, 버스로 1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높이가 42m나 되는 이 문은 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9만 명의 인도병사를 위한 위령비이다. 인도문에서 라즈파트 거리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양 옆으로 파란 잔디밭이 있고 그 너머로 국회의사당 건물과 정부청사 건물이 버티고 있고 그 가운데로 대통령궁 이 자리하고 있다.

바하이사원 (로터스사원)
바하이 사원은 연 (蓮)꽃의 모양을 기초로 한 파리부르즈 사흐바의 설계에 따라 널찍한 대지 위에 지워졌다. 이들 바하이는 미국 , 독일, 호주, 파나마 등지에도 독특한 양식의 사원들을 만들었지만, 이곳 인도에 세운 한 송이의 커다란 연꽃과도 같은 사원은 그 중의 압권이다 . 1,300여 명이 함께 앉아 집회를 가질 수 있는 규모의 실내는 신분이나 종교에 관계없이 공개되어, 각기의 신앙에 따라 기도하고 명상할 수 있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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